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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에 관하여/그냥일기

[그냥일기] LoL로 배우는 인문학 - Social Demarcations (사회적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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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꿀꿀한 글을 읽어서 기분이 안 좋던 차에, 동기 형이랑 점심먹다가 주고받은 이야기가 생각나 부활의 '잡념에 관하여'를 들으면서 한 줄 정리해본다.

최근 집살 준비를 하느라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이것저것 알아보고 다니는데, "아 역시 사람은 끕 나누기를 좋아하는구나"를 대번 느꼈다.

무주택자에 대한 멸시는 말할 것도 없고 경기도에 등기치면 인생이 두 단계는 내려간다는 둥, 과천을 과일촌이라 부르는 둥, 심지어는 잠실을 파출부촌이라 비하하는 등;; 아주 난리도 아니다.

 

이러한 행위를 Social Demarcations (사회적 구분)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본성이기에 세상 어느 분야에서나 찾아볼 수 있고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구분선은 내 클라쓰보다 하위에 있는 사람들한테만 긋는다. 내 위로는 구분짓지 않고 다 똑같은 사람인 척한다.

2. 구분선은 나와 인접한 클라쓰일수록 진하고 촘촘하게 긋는다.

 

간혹 구분선을 위에다가 그어대는 경우도 있긴 있다. 사람이 못 먹는 감을 보면 그렇게 된다.

가령 월세로 오피스텔이나 원룸따리에 살고 있으면서 '잠실 파출부촌 ㅅㄱ' 라고 하는 심리가 있는데 이는 사회적 구분행위에는 해당이 안 되고, '신 포도 효과'로 설명하는 게 더 적합하다.

 

LoL로 예를 들어보자.

골드4라도 입성하게 되면 '브실골'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며, '아브실'이라는 용어로 정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플래티넘을 달고 나면 뭔 아브실이냐 어감도 구리다며 계속 예전처럼 브실골로 부르자고 한다.

다딱이들은 귀찮아서 플래티넘 이하 티어는 전부 그냥 '심해'라고 부른다.

다만 다딱이들 중에서도 다1~2는 다4를 더러 대리로 올라온 거 아니냐고 따로 구분해 무시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 이라는 말이 있는데 누가 최초로 만든 학벌 서열놀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성대생이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이걸 보고 "서고연이거든욧!!!!" 하는 사람도 있고 "근데 뒤에 광명상가 빠졌어요"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이런게 다 사회적 구분행위에 해당한다.

서울대 출신들은 중경외시 뭐시기 하는 대학서열을 잘 모르거나 아예 관심이 없는데 LoL로 치면 본인이 이미 챌린저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최상위 포식자는 사실 저 말 자체에 없어 티어를 분류할 수도 없는 미국 명문사학 유학파, 고전파=페이커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잘 얘기하지 않으며, 그 포식자분들은 '국내 대학'도 좋은 대학입니다 ㅎㅎ 하고 말아버린다.

 

 

 

 

2010년대까지는 사회적 구분행위가 가장 심한 영역이 학벌이었을 수 있지만, 무제한 양적완화가 일으킨 양극화로 완전히 새로운 경제에 접어든 2020년 지금은 부동산이 그 바톤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불과 1~2년 사이에 디시 부동산갤러리가 서열놀이로 뒤죽박죽이 돼버렸고 좋은 정보가 서열놀이 똥념글에 묻혀버리는 걸 보니 느낄 수 있다.

 

아리팍 아리뷰 첼리투스 트리마제도 부동산 서열놀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요즘, 아이비리그 유학파들처럼 대한민국 부동산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 사회적 구분행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동네가 어디냐고 물으면 난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나인원한남과 이태원로55번길 인근의 재벌촌

이태원로55번길 근처 재벌촌이다.

삼성, 신세계, 현대차, 농심 등 다양한 그룹 회장님들이 여기서 사신다.

서민 일개미들이나 직주근접성이니 학군이니 숲세권이니 따져가며 몇 억이나마 부동산으로 벌어야 하는 처지인거지, 이분들은 입지 분석이고 뭐고 그런 거 없다.

그냥 오래전부터 살던 곳인데, 재벌이 분가해서 또 다른 재벌이 되면서 '어 나도 그냥 옆집에 살까?' 해서 대저택 옆에 대저택 지어놓고 살아오고 있는 거고 앞으로도 이변이 없는 이상 자리를 옮길 이유가 없다. 

 

서열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부동산 서열놀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태원 재벌촌은 저택 하나하나가 압도적이고 웅장하지만 그 대저택마저도 총수일가 주식 지분가치와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재산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저택 공시가격이 올해 기준으로 400억 원이라지만 이건희 회장 재산 17조 원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뿐인 것이다...그래서 집값이 뭐 어떻게 되든 말든 관심도 없고 우리 그룹이나 4차산업혁명 시대에 더 잘 됐으면, 또 세금이나 좀 덜 냈으면 좋겠다는 거다.

 

남들 심해에서 챔프 분석하고 QWER 콤보 익히고 있을 때 이분들은 '야 프나틱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하면서 밴픽 연구하고 선수조합 염두하는 거다 관심사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부동산 영역에도 내 위의 천상계, 천상계에도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의 세계가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최근 5~10년 사이에 등기를 쳤냐 안 쳤냐에 따라 남은 인생의 길이 갈려버린 2020년대,

공부고 학벌이고 직장이고 나발이고 다 의미없고 유주택/무주택 여부가 제일 중요해진 2020년대를 살아가는 태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유주택자들에게.

 

사회적 구분행위는 일종의 본능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휴거'니 '엘사'니 하는 단어를 대놓고 씀으로써 상처를 주지 말기로 하자.

또 사회적 구분행위에 열심이신 분들 말을 너무 주의깊게 듣는 바람에 휘둘려 버리면, 특히 차 살 때, 티어 욕심에 보태보태병에 걸려서 분수에 맞지 않는 지출을 해버리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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