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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부린이일기

[부린이일기] 아파트 리모델링 천태만상 - 평촌 목련2단지대우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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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면접에도 출제되었다는 '100만원 게임'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갑과 을이 100만원을 나눠가지는 방법인데,

 

갑은 100만원을 둘이서 어떻게 나눠가질 것인지 각각의 금액을 결정할 수만 있고,

을은 갑의 금액분할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만 결정할 수 있다.

 

을이 갑의 금액분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100만원은 아예 통째로 사라진다.

 

이때 갑은 을에게 금액분할을 어떻게 제안하는 것이 좋을까?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갑이 99만 9,999원 / 을이 1원 이렇게 나누자고 할 것이다.

갑이 얼마의 이익이나 효용을 남기는지 고려하는 것은 을 입장에서 비합리적이며, 1원이라도 건지는 것이 을 본인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반면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50대 50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80대 20을 넘어서는 치우친 제안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행복은 남과의 비교에서도 다분히 말미암는지라, 갑이 99만 9,999원을 먹는다는 사실이 주는 고통이 을 본인이 1원을 먹어서 오는 행복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학을 주전공, 심리학을 부전공했지만, 위 이야기에서는 후자의 판단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실체적인 근거나 사례를 요한다면, 디시인사이드에 접속해서 '알트 갤러리', '전자화폐 갤러리', '해외주식 갤러리' 또는 '미국 주식 갤러리'에 가보라. 사촌도 아닌 남이 땅을 샀다고 엄청난 복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직접 볼 수 있다.

 

제목을 '아파트 리모델링 천태만상'이라고 지어놓고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고?

 

평촌 목련2단지대우선경 아파트에서 리모델링을 둘러싸고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 배경

 

안양 동안구 평촌 목련2단지대우선경(1992년 준공, 30년차)은 평촌에서 가장 리모델링 진도가 빠른 아파트 단지이다.

 

세대수 증가분에 대한 권리변동계획 수립 총회를 잘 마쳤으며, 단지 전체 75%의 구분소유자 동의 / 동별 50% 구분소유자 동의만 얻으면 바로 행위허가(사업승인) 받고 분담금 확정하여 이주/착공하면 완료된다.

 

행위허가를 위한 동의율은 5월 현재 65% ~ 70% 정도라고 하며 동의서 징구에는 2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때문에 매물이 쏙 들어간 상태이며, 간간이 나오는 매매건도 저층부가 아닌 이상 신고가인 경우가 많다.

안양 붇카페를 보니 아직 국토부실거래가가 뜨지는 않았지만 23평형짜리가 8.5억에 매매체결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2. 14평형 VS 23평형, 100만원 게임

 

리모델링이 이루어지면 소유주들에게는 무척 좋은 일이다. 

 

분담금이 몇억 들기는 하겠지만 신축으로 탈바꿈해서 올라가는 시세상승분이 훨씬 크고,

주차난, 녹물 등도 해결되어 실거주 만족도도 크게 높아진다.

 

그러나 리모델링 사업이익(신축된 아파트값 - 세대별 분담금 - 지금 아파트값)이 소유주들 간에 불공평하게 분배될 예정이라면 어떨까?

 

목련2단지대우선경은 14평형과 23평형으로 구분되어 있다.

14평형은 384세대(3개 동)로 전체 구분소유자의 약 41%, 23평형은 610세대(6개 동)로 전체 구분소유자의 약 59%에 해당한다.

 

아래는 리모델링 시공 시에 따르게 될 목련2단지의 건축도면을 시공사 효성의 홍보영상에서 공개한 것이다.

 

사진 출처 : 안양 목련2단지 리모델링 홍보영상, 해링턴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GQjV3rrYZiQ)

보면 알겠지만, 48A (14평형 일부)의 경우 기존에도 이미 길쭉한데 복도 쪽이 트이면서 더 오이처럼 길어져 공간활용성이 떨어진다.

 

이른바 복도식 아파트에서 세대 이동 안 시키고 그냥 리모델링 도면 그려버렸을 때 나온다는 '동굴형 도면' 인 것이다.

 

꼬다리로 하나 붙여준 조그마한 방도 심지어 거실 반대편 방향이라 채광에서 크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런 아파트 세대는 신축이라도 들어가서 사는 의미가 별로 없다.

 

목련2단지는 나름 이쪽 동에서 저쪽 동으로 세대 이동도 시킨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도면이 나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반면 48B (14평형 일부)의 경우 완전한 3베이가 아니라 2.5베이가 되는 게 뒷맛이 조금 찝찌름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48제곱이 원체 작기도 하고 이정도면 도면상 큰 불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 안양 목련2단지 리모델링 홍보영상, 해링턴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GQjV3rrYZiQ)
사진 출처 : 안양 목련2단지 리모델링 홍보영상, 해링턴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GQjV3rrYZiQ)

반면 23평형 도면들에 달린 저 무수한 창문들을 보라. 

 

기존에는 모두 2베이였건만 일부 세대(75D4)는 리모델링 후 4베이까지도 나온다.

 

23평형 소유주들은 웬만하면 다 리모델링의 모든 단계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도면이다.

 

즉 투입금 (아파트 매수가 + 세대별 분담금) 대비 리모델링 사업이익을 비교해 보자면, 러프하게

사업이익이 적은 14평형 일부(48A) VS 사업이익이 많은 23평형 + 14평형 일부(48B)

로 나눌 수 있다.

 

이런 도면이 건축심의안으로 상정되어 통과되는 것을 애초에 48A 소유주들이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리모델링 주택조합 조합규약의 절대다수는 총회의결을 '재과출 출과찬'으로 한다.

 

과반수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없는데 상대방은 그럴 수 있다면 도면 건축심의 승인결의를 막을 수 없다.

 

14평형 전체의 구분소유자도 41% 비중밖에 안 되는데,

그 중에서도 일부인 48A 소유주들이 죄다 조합가입해서 반대표 던졌어도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즉 48A 소유주들은 위의 '100만원 게임'에 나오는 갑처럼 건축도면에 변경을 가하거나 제안을 할 주도적인 힘은 없고,

기껏해야 리모델링 행위허가를 위한 찬반의사나 표시할 수 있어 오히려 '100만원 게임'의 을에 가까운 것이다.

 

이러니 14평형 소유주 중 일부는 '난 1억 먹는데 쟤들은 3억 4억씩 먹게 생겼다' 와 같은 복통증세를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중 극단적인 일부는 "그럼 나 행위허가 동의 안해줘" 라고 100만원 게임의 을처럼 버틸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목련2단지 소유주 중 일부는 '내재산지키미' 어쩌구 모임을 만들어서 리모델링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

 

 

3. 넓어지는 전선, 배관공사 이슈

 

한편 우리 주택법 제22조에서는 각 동별 50% / 단지전체의 75% 리모델링 사업동의를 얻었으면 이에 협조하지 않는 소유주에 대하여 강제로 매도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리모델링 조합 입장에서는 48A 소유주들을 각개격파하여 어떻게든 72% 동의율 수준까지 올려놓고 '매도청구당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빕니다' 하고 은근히 압박을 줘야 하는 상황이고,

48A 소유주들은 연대와 결속을 단단히 다져서 75%를 못 넘기도록 절대사수해야 하는 일종의 캐삭빵인 셈이다.

 

48A 소유주들이 느낄 매도청구에 대한 두려움과 사업이익의 불균등분배에 따른 배아픔을 형량하여 보면,

꼭 후자가 더 앞선다고 볼 수만은 없을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실거주 소유주뿐만이 아니라 세입자도 참여하게 되어 있는 목련2단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배관교체공사 안건에 대한 찬반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곧 리모델링 들어가겠다는 아파트에서 배관공사라니?

 

수도배관공사는 참고로 단지 내부 배관은 소유주들의 부담인 장기수선충당금(더 필요하면 더 걷어서)으로 진행해야 하며, 

단지 외부는 관할 행정청의 예산지원을 받아서 진행해야 한다.

 

안양시청이 여기에 예산 쓰는 걸 허가해줄까?

 

목련2단지 엘리베이터들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다.

 

어조가 격하지만 정리해보자면 전월세 세입자를 끌어들여서,

아무리 곧 리모델링하겠다는 단지라지만 깨끗한 물 먹을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이야기인 듯히다.

 

1기 신도시 썩다리들은 늘 녹물 문제를 겪어왔는데,

하필 이 타이밍에 배관공사 담론을 전개하여 가장 큰 이득을 볼 집단이 누구일까? 

 

나는 리모델링에 반대하는 14평형 일부 소유주들이라고 본다.

 

 

지금 세입자들은 전세가격이 최근 2년 사이에 너무 올라서, 같은 전세금으로 동일한 주거만족도를 새로 가지기가 어렵다.

 

가급적이면 2+2 계약갱신요구권 행사를 위해서 리모델링이 차라리 지연되기를 바라는 세입자들도 많을 것이다.

 

또 대부분 임대차계약 특약사항에 '본 아파트 단지는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 중인 단지로서 이주 개시 시에는 퇴거해야 함'을 넣어놓고 전세계약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안그래도 리모델링이 빨리 안 됐으면 좋겠는데 세입자보고 녹물이나 계속 먹으라니 세입자 입장에서는 분한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지들만 아는 리모델링 조합을 적대해야 할 것 같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세입자들이 전선에 들어왔으니 48A 소유주들 스스로의 결속력과 단합을 다지는 데에는 아무튼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럴 일은 없어보이나 만약 배관공사가 진짜로 된다면,

'아니 몇 달 전에 배관공사를 했는데 돈아깝게 지금 리모델링을 한다고?' 라는 호소문이 목련2단지 내에 붙는지 유심히 봐야겠다.

 

누가 주도했는지 명명백백해지는 순간이기에...

 

 

4. 결론

 

위와 같은 상황을 종합하여 고려해 보면, 목련2단지 리모델링의 75% 동의율 달성에 대하여 판단할 때

"어? 한두달 사이에 65~70% 동의서 징구했으면 나머지 5~10%도 금방 하겠네?"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리모델링으로 별 이익을 못 건질 소유주들이 몇 세대나 되는지, 알박기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큰지, 최근 배관공사 이슈같이 특이한 일이 또 일어나고 있는지 등을 면밀하게 주변 부동산에서 발품팔며 체크해야 할 일이다.

 

조합이나 세입자 중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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