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념에 관하여/수불석권 프로젝트

[수불석권 프로젝트] (2) 정책의 배신 (윤희숙)

반응형

십 년도 더 전, 그러니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도 전의 먼 옛날에, 디시인사이드 주식 갤러리에서 활동하시던 '둥글게'라는 분이 있었다.

매번 이 분이 관심을 갖거나 매수하는 종목은 무조건 폭락하는 신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또 풋옵션을 사거나 하락에 배팅하는 경우 무조건 주가가 올라가는 기적이 일어났다. 거시경제 전망조차도 이를 피할 수 없었는데, 둥글게가 2009년 3월 위기론을 주장하자마자 코스피 지수가 그 달에만 20% 회복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둥글게를 '둥신'이라 부르며 둥신의 글을 더러 신탁이라고 불렀다. 신탁이 내려지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정반대로 행동하기 위해 애썼다.

 

"얘 말(행동) 반대로만 하면 무조건 돈 번다"라는 이 밈은 10년 뒤에 '실전주식투자 갤러리'의 '이재환'이라는 분을 거쳐 선물트레이더 유튜버인 '박호두'님께 계승된다. '호반꿀(호두 반대로 매매하면 꿀)', '인간지표' 등의 유행어가 돌기 시작했다.

부동산시장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라서 '라이트하우스'라는 네임드 유튜버가 앞장서서 인간지표 역할을 수행 중인데, 정말 신통하게도 어떤 지역을 콕 찝어 대폭락이 시작했네, 큰일났네, 난리났네 하고 새 영상을 올리면 곧이어 해당 지역 아파트 매매가가 폭등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부동산 시장참여자들은 이를 '라반꿀'이라고 부르며 본인이 매수한 지역을 라이트하우스가 영상으로 올려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윤희숙 국회의원이 지은 '정책의 배신'은 여러 공공도서관에서 사실상의 금서로 취급한다고 한다. 책을 별 기준도 없이 그냥 비치하지 않기로 했다는 기사를 읽고, '반꿀' 심리가 발동하여 바로 책을 사버렸다.

 

 

금서의 시대 도래? 윤희숙 의원 책 도서관 비치 거부 논란

"나는 임차인입니다"라는 국회 연설과 함께 화제가 된 윤희숙 (국민의힘, 서울 서초구갑)의원의 책을 구체적인 기준 없이 금서(禁書)로 지정한 공공도서관들이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MBN과 서범

www.thewordnews.co.kr

사실상 정부와 집권여당 의도의 정반대 포지션을 부동산 시장에서 지키고 있었으면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던 지난 3년인데, 이제는 읽을 만한 책이 어떤 것인지까지 손수 가려주시니 독서를 안 할 수가 없다.

 

솔직히 출판사에서 부제를 좌파 기득권 수호를 운운하며 좀 날카롭고 자극적인 것으로 뽑아서 그렇지 일독해 보니 충분히 제기할 수 있을 만한 비판이었다.

책에서 윤 의원이 비판하는 정책들은 다음과 같다.

- 너무 높은 최저임금

- 주 52시간제 강행

- 비정규직의 무조건적인 전환

- 국민연금의 세대간 불공평

- 정년연장

- 신산업정책 (특히 모빌리티)

 

각각의 정책을 챕터별로 비판하고 있지만, 단 하나의 논리가 일관되게 내용을 지배한다.

"단기적인 이익과 포퓰리즘에 눈이 멀어 미래세대를 희생시켜서는 안 되고, 사회 전체의 사중손실(DWL, Deadweight Loss)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책에 사중손실의 개념이 나오지는 않는다.)

 

최저임금, 주52시간제, 비정규직 무조건 전환, 정년연장 등은 노동시장의 약자를 원천적으로 시장 자체에서 배제시키는 대신 경력을 갖춘 노동자들의 후생을 증가시키는 정책이며, 이 과정에서 사회 전체적인 비효율이 생긴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약자는 20대 취준생 청년과 같이 머릿수가 적은 반면, 경력을 갖춘 40대 노동자들의 머릿수는 많다. 포퓰리즘적으로 표 계산을 해보면 사회 전체적인 DWL이 좀 생기더라도 20대를 희생시켜 40대를 챙겨주는 게 다음 집권을 위해 당연한 포석이 된다.

 

지금의 출산율을 감안하면 국민연금 부담율은 미리 지금부터 올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가다가는 소득의 절반이 노인부양을 위해 투입되는 날이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능력 있는 청년부터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탈조선 러시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지금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리겠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 그게 가능했으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부터 없어졌을 것이다.

 

카풀과 타다를 허용했다가는 전국 택시기사 27만 명의 표를 확정적으로 잃어버리는 반면, 공유경제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사회 전체의 것이기에 전국민의 표를 모빌리티신산업 적극허용만으로 더 땡겨올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때문에 포퓰리즘 관점에서 카풀과 타다를 금하고 택시기사들의 권리를 챙겨주는 것이 우월전략이다.

 

그러나 이런 의사결정들은 반드시 훗날의 대한민국을 좀먹게 만드는 일이다.

 

 

2년 전만 해도 흔히 "최저임금 만 원 못 줘서 망하네 어쩌네 하는 가게나 기업들은 망하는 게 응당 맞지" 라고들 말했다. 2020년, 아직 최저임금은 만 원 찍지도 못했는데 일부 가게는 망했고, 나머지 가게들은 전부 키오스크 같은 무인결제 시스템을 도입해버렸다. 최저임금도 안 지키는 악덕업주들이 전부 망했더라면 "꼬시다" 라는 쾌감이라도 유권자들이 느낄 수 있었겠지만, 일부만 망했기에 별로 느끼지도 못했고 키오스크 도입으로 알바 일자리만 날아가버렸다. 키오스크 업자들이 살판난 것은 물론이다. 

 

투자도 마찬가지지만 경제정책을 당위명제만으로 풀어나가려 하면 무조건 필패한다. 내가 학생운동하던 586세대가 사회지도층이 된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회사에 입사하거나 자영업을 하면서 진득하게 돈벌이를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운동하고 시민단체 하고 젊은 피 영입으로 정계 입문하고 20년 지나고 보니 벌써 그만한 권력을 얻어버린 것이다. 자주민주통일이라는 궁극적이고 단일한 목표가 존재하는 당위의 세계에서 민중을 지도와 선동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국민 각자가 보이지 않는 손을 따라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며 편법과 지름길을 오가면서 부를 쌓는 모습이 고깝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꾸 당위명제를 가득 담은 경제정책들로 국민을 통제하고 선도하려 한다.

 

임대차보호법 2+2 정책을 시행하니 집주인은 실거주 명목으로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우회수단을 구사한다. 그 우회수단을 막으려고 전세 세입자가 실거주여부를 체크해서 아닐 경우 배상받을 수 있게 정책을 또 시행한다. 그러자 진짜로 직계존비속을 실거주 시켜버리는 우회수단을 집주인이 구사한다. 그 우회수단을 막으려고 실거주 명목으로 전세계약 연장을 안 하면 2년간 집을 못 팔게 해버리는 정책을 구사한다. 창과 방패는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그대로 놔뒀으면 물 흐르듯 갔을 시장질서가 누더기가 되어버린다. 현 집권여당과 정부에게 이런 우회수단들은 편법과 불공정으로 보일지 몰라도, 이게 현실인 걸 인정하지 않으면 정책 실패는 계속될 것이다.

 

2천 년도 더 전에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에서 "천하 사람들이 왁자지껄 오가는 것은 모두 자기의 이익 때문이다"라 밝힌 바 있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무시하고 자꾸 정책에 국민을 끼워맞추려고 한다면 현 정부의 레임덕이 찾아왔을 때 크게 후회할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