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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식소행/냉면

[면식소행] 내돈내산 냉면 리뷰 (10) - 을지로 을지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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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끓여주는 다방을 아시나요?

 

을지로3가역 5번출구 앞의 을지다방에서는 라면을 시켜먹을 수 있습니다.

 

주력 메뉴는 심지어 다방커피 '둘둘둘'이 아니라 노른자 넣은 쌍화차입니다.

 

오늘은 을지다방 가서 쌍화차 한 잔 하기 전에 배 채우기 좋은 냉면집, 

 

을지면옥을 소개합니다.

 

을지면옥은 앞서 언급한 을지다방과 같이 을지로3가역 5번출구 근처에 있습니다.

 

초역세권이긴 합니다만, 을지로3가역 역사 설계 특성상 2호선을 타고 온다면

 

게이트에서 카드 찍고 나와서 5분은 걸으셔야 합니다.

 

을지면옥 간판은

 

공구상가같은 곳들 사이에 붓글씨로 쓰여 있어서

 

처음 방문할 때에는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낡은 입구를 들어가면...

 

낡은 입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걸 지나면 을지면옥입니다.

 

본디 이곳은 재정비촉진지구 '세운3구역'에 해당하여 곧 재개발이 되어야 할 곳인데,

 

몇년 전부터 '그러면 내 추억의 을지면옥은 어디가는거냐!'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죠.

 

스테레오타입으로 언뜻 생각하면,

 

"을지면옥이 오랜 기간 여기서 월세내고 장사해왔는데 재개발로 쫓겨나는건가?" 싶을 수 있지만

 

사실은 을지면옥은 세입자가 아니라 입점한 자리의 건물주였습니다.

 

잘나가는 식당에 재개발 대상구역 토지를 깔고앉은 갓물주이기까지 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 셈입니다.

 

오히려 '재생'이니 '보존'이니 좋아하던 전 시장이 세운3구역은 재개발하고 을지면옥만 띡 남겨놓는 방안을 구상하자

 

개발이익을 얻을 수 없음이 우려되었는지 "세운3 개발 할거면 우리까지 다해라!" 라고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야기가 부린이일기로 샜는데...

 

을지면옥 메뉴판입니다.

 

평양냉면은 12,000원 입니다.

 

이 집은 소고기국밥과 불고기를 추가로 취급합니다.

 

오히려 만두나 녹두전이 없어요.

 

두 명이서 간 김에 돼지편육도 한 접시 시켰습니다.

 

편육 비싸죠? 7년 전보다 만원이 올랐습니다.

 

면수입니다.

 

면수라고 내왔는데, 너무 닝닝하고 그냥 끓인 물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이날은 농도가 옅고 특색도 없었습니다.

 

밑반찬도 그냥 그렇습니다.

 

배추김치도 주는 것은 좋네요.

 

돼지편육을 시켰기 때문에 장도 한 종지 나왔습니다.

 

끝에 사이다 같은 청량한 단맛이 같이 납니다.

 

돼지편육입니다.

 

요거 물건입니다. 

 

분명히 식어있는 고기인데, 식감도 좋고 고기맛 지방맛이 우수합니다.

 

오돌뼈도 단단하지 않고 잘 씹힙니다.

 

문상 가면 흔히 먹을 수 있는 편육의 맛보다 세 수는 위에 있습니다.

 

비계에 붙은 껍데기 부분이 쫄깃쫄깃,

 

아니지 욜깃욜깃(?) 합니다.

 

특히 편육을 소스에 찍었을 때 궁합이 매우 좋습니다.

 

뛰어난 술안주이자, 냉면과 번갈아가면서 먹기에도 그럴듯한 제육입니다.

 

값이 조금만 싸면 혼자 갈때마다 한 접시씩 시켜먹을 텐데요...

 

을지로 을지면옥 냉면 (12,000원)

을지면옥 냉면(12,000원) 입니다.

 

고명으로는 계란 반 개, 돼지고기 한두 점, 소고기 한두 점, 고춧가루, 채썬 고추 그리고 파가 들어갑니다.

 

비주얼은 필동면옥의 냉면과 비슷한데,

 

차이점이라면 파가 상당히 많이 들어갔습니다.

 

면은 평양냉면들 중에서는 가장 얇은 편이고, 색은 하얀색에 가깝습니다.

 

면의 색이 검지 않으면 메밀 함량이 적을 것이다, 밀가루면일 것이다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메밀을 잘 도정해서 면을 뽑으면 순면인데도 흰색으로 뽑을 수 있습니다.

 

면이 검은 것은 오히려 메밀 도정이 덜 되어서 까만 메밀껍질이 섞여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면을 한 젓가락 집어서 맛을 보니 메밀향이 있긴 한데 구수한 향은 약한 편이었습니다.

 

육수는 맑고 투명합니다.

 

한 입 먹어보니, 고기육수 베이스인데 육향이 매우 연합니다.

 

면을 먹고 육수를 연이어 사발로 들이키지 않는 이상은

 

면에도 간이 좀 덜 묻은 채로 입안에 들어가게 되는 느낌이었는데,

 

약간 뿌려둔 고춧가루가 면과 육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듯했습니다.

 

 

육수와 파를 같이 먹게 되는 경우, 육수의 향이 완전히 가려지고 파의 향이 우세합니다.

 

파는 자기 개성이 매우 강한 채소인데

 

아무리 설렁탕 곰탕 갈비탕 온갖 고깃국물에 파가 잘 어울린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육향에 이 정도의 파를 넣은 건 좀 과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파는 반쯤 걷어내고 먹을걸...!

(완면욕심)

 

소고기 고명은 육수를 다 뽑아내서 뻣뻣한 마분지 같은 식감이지만

 

돼지와는 다르게 씹으면 씹을수록 어금니 단면 사이에서 육향이 재생산되는 느낌입니다.

 

소고기 한 점은 면과 따로 드시기를 권합니다.

 

제육 비계+껍질이 면과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특히 메밀면에게 부족한 씹는맛을 잘 커버해 줍니다.

 

배가 고픈데다 국물 간이 자극적이지도 않아서,

 

무난하게 완면하였습니다.

 

 

 

을지면옥의 냉면은 밍밍한 맛을 싫어하는 분들이 드시면

 

"소가 들어갔다 나온 목욕물 맛", "수돗물 받아서 미원 한 숟갈 풀었네"

 

라는 반응이 높은 확률로 따라나올 냉면입니다.

 

 

맛이야 다 취향 따라가는 것이니,

 

이에 대해 "어허~ 을지면옥은 본디 그런 맛으로 먹는 것이야"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평양냉면보다 육향과 메밀향이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 같습니다.

 

같은 '의정부파'(?)로 엮인다는 필동면옥과 비슷하기는 한데, 향도 맛도 좀더 약합니다.

 

 

을지로 을지면옥에서 특별히 집중해야 할 냉면맛의 요소로는
1. 연한 육향의 육수

2. 의외로 큰 역할 하는 고춧가루

3. 파는 아니다 싶으면 반쯤 걷어내자

 

정도가 있겠습니다.

 

제 별점은요,

 

★★★★★★☆☆☆☆

 

6/10



[번외]

 

사실은 요즘 저도 평양냉면의 맛 포인트에 조금 질린 것 같기도 합니다.

 

냉면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아지노모도' 같은 MSG에 상당부분 맛을 의존하도록 진화하였는데,

 

육향이니 슴슴한 맛이니 제가 운운하는 게 스노비즘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게 현자모드가 되어있던 차,

 

우연한 기회에 굉장히 새로운 맛의 냉면을 발견했습니다. 

대추차 같은 물에 질긴 공장제 면을 담갔는데 먹을 만하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역시 냉면의 세계는 끝이 없고 질려버리기엔 한참 멀었습니다.

 

이 친구는 다음 리뷰에 소개하기로 할게요~

 

 

 

 

P.S. 

예전에는 수행자의 마음가짐으로 수도권의 이름난 냉면은 죄다 리뷰하려고 말머리를 '면식수행' 으로 지었는데,

 

삶이 바빠 가끔씩 먹게되다 보니 '면식의 소박한 행복' 의미를 담아서 ㅜ를 ㅗ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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