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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코린이일기

[코린이일기] 해킹거래소 야피존(Yapizon)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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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졸업논문을 쓰려고 이것저것 찾다가 처음 비트코인을 접했다.

2016년 10월인가 11월이었으니 업비트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이때 코빗에서 이더리움이 1ETH에 만원 밑으로 거래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트코인은 트레이딩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마이닝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국내 커뮤니티 역시 채굴에 관련한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 위주로 돌아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땡글이다.

 

땡글닷컴 - 블록체인, 암호화폐, 트레이딩

땡글은 국내 블록체인 역사와 함께 하고 있는 커뮤니티로서, 채굴, 트레이딩 및 개발 등 블록체인 산업의 전반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는 암호화폐 커뮤니티입니다.

www.ddengle.com

정보 수집 겸 게시판을 여기저기 들어가보니 당시 땡글에서 밀어주던 거래소 '야피존'이 눈에 들어왔다. 

90년대 스타일의 증권사HTS를 조악하게 베껴 만든 가상화폐 트레이딩 시스템을 제공하는 형태였다.

지금처럼 KYC도 빡빡하지 않을 시절이라 바로 약간을 입금해서 매매/송금 테스트를 진행했고 해당 테스트경험을 논문 작성에 유용하게 써먹었다.

 

대학교 졸업학년이다 보니 생활비도 부족하고 해서 테스트에 쓴 비트코인은 싹 다 팔고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취업 직후인 2017년 1월에 보니 논문 쓸 때보다 비트코인이 상당히 많이 올라 있었다.

이에 나는 투자적인 관점으로 비트코인에 접근해보기로 결심했고, 코빗을 쓸 수도 있었지만 쓰던 시스템을 그대로 써서 투자해보기로 했다.

이 경로의존성 때문에 나는 큰 코를 다치게 된다.

 

보안카드 발급 안내문

금액을 좀 크게 운용하고 싶은 경우 발급 신청했어야 했던 야피존 보안카드의 안내문이다.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안전금고' 서비스와, 은근히 권장하는 듯한 레버리지 관련 안내사항이 눈에 띈다.

 

지금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진 야피존 보안카드

은행이 하는 것처럼 보안카드까지 발급해서 보내오니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그러나 보안카드와 안전금고 서비스가 무색하게 야피존이라는 거래소는 정작 자기들의 지갑을 털리고 만다.

 

우상향하던 비트코인에 흐뭇해하던 나는 이 야피존이라는 양반들이 고객 총자산의 37%에 해당하는 가상화폐를 해킹에 의해 탈취당했다는 공지를 띄운 걸 보고 처음에는 '아이고 불쌍해라'라고 생각했는데, 불쌍한 것은 이 사람들이 아니라 나였다.

가상화폐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그냥 본인들이 해킹당한 37%를 고객에게 전가하기로 한 것이다.

2020년에 이런 짓을 했다가는 일이 커지겠지만, 2017년 4월까지만 해도 코인의 인지도가 높지 않아 그냥저냥 넘어갔다.

 

나도 백 몇십만 원이던 가상화폐 자산평가총액이 순식간에 수십만 원대로 37% 삭감을 당했는데, 이때 운영진 사람들의 대응이 걸작이다.

37% 삭감을 해놓고 땡치면 모든 유저가 코빗이나 그 당시 막 핫하던 코인원으로 이사갈 것이 뻔하니, 출금기록이 없는 유저들에 한해 단계적으로 '페이(Fei)'라는 거래소 내부코인을 거래수수료에 기반해 지급하겠다는 거였다.

엑소더스 안 하면 배당 줄테니 자본 빼지 말아달라는 애원 내지는 협박이었다.

 

난 페이고 웨이고 모르겠고 가차없이 뺐고, 이는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야피존은, 정확히는 이 야피존의 후신은 두 번이나 더 가상화폐 지갑을 털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고작 2년 사이에.

 

어느 '불량 거래소'에서 지난 2년 동안 일어난 일들 - 코인데스크코리아

남편과 아내가 대표와 부대표 직함으로 함께 운영하는 한 암호화폐 거래소가 있다. 이 거래소는 두 번이나 해킹을 당해 수백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파산을 하려던 이 거래소는 한 자산가가 인

www.coindeskkorea.com

해킹 사건으로 '믿거갑'이 된 야피존은 2017년 10월에 유빗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여 새롭게 출발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12월달에 또 한번 해킹을 당하게 되며 아예 파산을 해버렸다.

4월 야피존 해킹사태와의 차이점은, 2017년 12월은 회사에서도 한 자리 건너 한 명이 업비트 앱을 쳐다보는 게 보일 정도로 완연한 불장이었기 때문에 유빗 해킹사태는 뉴스 방송을 제대로 탔다는 점이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2번이나 보안을 지키지 못하고 파산한 이 거래소를 고객 중 한 명이 인수를 한다. 그리고 이름을 코인빈으로 개칭하여 새롭게 출발하려는데, 2018년 11월에 또 지갑을 털렸다.

이번에는 외부해킹으로 털린 것도 아니고, 비트코인의 전송/이체에 꼭 필요한 개인키(Private Key)를 내부 직원이 날려먹어서 생긴 일이었다. 

 

이렇게 야피존 - 유빗 - 코인빈이 3차례에 걸쳐 고객에게 입힌 손해는 약 350억 원에 달한다.

 

야피존 보안카드 앞면.

얍(Yap) 섬의 돌덩어리 화폐 '라이'와 이를 다루는 원주민들의 모습에 착안한 BI로 보인다.

그렇지만 내 눈에는 고인돌 선사시대급 보안수준을 나타내는 로고로 비칠 뿐이다.

 

업비트, 빗썸, 바이낸스의 시대가 오기 전에는 이런 가당찮은 일도 왕왕 생겨났다.

조악함의 수준이 너무 심해서 내게는 엄청 옛날 일처럼 느껴지지만, 이렇게 가상화폐가 사람들 곁으로 다가오기까지가 불과 4~5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 하겠다.

 

앞으로 5년 뒤에는 가상화폐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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