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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부린이일기

[부린이일기] 평지와 산지, 그리고 강 - 21세기 배산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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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주근접성, 역세권, 도로교통, 상권, 학군, 공원과 숲 등 좋은 입지의 조건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내 땅은 평평한데 옆 땅으로 넘어가는 길이 산과 물로 막혀 있느냐?' 를 핵심 요소로 본다.

 

'내 땅이 평평'해야 하는 이유는 경사가 없는 평지가 도시계획과 교통망 증설, 각종 건물 건축에 유리해서 장기적으로 자본이 모이기 때문이다. 

비단 민간자본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고, 국가자본 즉 세금과 예산에도 해당된다. 어느 정부나 지자체가 바로 옆에 평지가 있는데도 산지의 암반을 뚫고 강바닥 밑에 터널 지어가며 철도교통망을 뚫어줄까? 도로 내고 철길 낼 때 우회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고대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가 카피톨리누스를 포함한 일곱 개의 언덕에 도읍할 때에는 적당한 고도, 주변의 산지가 방어를 위해 꼭 필요한 입지조건이었지만 21세기에는 깔끔한 평지가 최고다.

 

강남의 격자형 도로 및 철도

한국에서는 최고의 깔끔한 평지 입지가 가로로는 반포 - 잠실, 세로로는 압구정 - 도곡에 이르는 대평지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잠원, 서초, 대치, 청담, 압구정 쪽은 서울에서 가장 깔끔한 바둑판을 보여주고 있다.

 

동탄1신도시와 반석산

동탄1신도시의 도로가 동탄2신도시와는 다르게 죄다 곡선으로 나 있는 이유가, 반석산이 정중앙에서 알박기를 시전하고 있기 때문에 바둑판형 신도시로 도시계획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격자를 내려면야 낼 수 있지만, 환상형으로 만드는 것보다 공간낭비가 심했을 것이다.

덕분에 시내주행하는 차량의 속도를 강제로 떨어트리는 효과를 얻어 과속사고는 줄일 수 있겠지만, 애초부터 동1이 반석산이 없는 매끄러운 평지였다면 최초 도시계획 당시 바둑판형이냐 환상형이냐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땅이 울퉁불퉁하면 큰 길이나 기차역도 멀어진다. 동1에서 동탄역이나 경부고속도로로 가려면 동쪽으로 꽤나 나가야 한다. 이처럼 평지 사이사이에 산이 박혀 있으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서판교 운중동

또 평지의 상하좌우 폭이 최소 5km정도는 나와주면 좋다.

서판교 운중동은 판교에 가깝다는 것만으로 상당한 입지적 가치를 가지지만, 상하 폭이 2km도 안되기 때문에 인구를 많이 수용할 수 없고 업무지구를 형성하기 어렵다(판교가 가까워서 그럴 필요도 없지만)

즉 운중동은 판교와의 운명공동체이며 앞으로도 이를 벗어날 수 없고,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 판교가 몰락하는 날이 오면 똑같이 몰락하게 된다.

'제2의 판교' 같은 자족도시 후보군을 찾는다면 무조건 평평하면서 상하좌우 폭이 넓은 곳을 봐야 한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평지가 넓기만 해서는 안되는데, 내 땅의 입지가 좋아질 것 같으면 금세 옆 땅에서 대체재 행세를 하려고 들기 때문에 높은 희소성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이클 포터의 5 Force 모델에 따르면 산업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다섯 가지 요인(5 Forces)으로 신규 진입의 위협, 공급자의 협상력, 구매자의 협상력, 대체재, 기존 사업자가 있다.

부동산으로 치면 공급자/구매자의 협상력은 거시적인 흐름상 매도자우위 시장이냐 매수자우위 시장이냐로 해석할 수 있겠고, 대체재와 신규 진입의 위협은 바로 이 평지가 어느 범위에서 산과 강으로 가로막히느냐에 달려있다.

 

고양일산과 파주운정 근처의 대형 농림지역

1기신도시 일산의 경우, 모종의 호재로 이 지역이 잘 될 것 같으면 그 상승분을 2기신도시 파주운정과 나눠먹게 된다. 또 한강 하류 방향과 북쪽 파주까지 평지가 늘어서 있어 개발할 수 있는 땅이 너무 많다. 나라에서 주택공급이 더 필요하면 주변 개발제한구역이나 농림지역, 계획관리지역을 이용하여 n기 신도시를 해 버리겠다고 할 수도 있다.

도시연담화가 주는 장점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자족도시 규모를 갖춘 후의 연담화는 교통 측면에서 부담이 심하므로 그렇게까지 달가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추가적인 대체재가 바로 옆에 공급폭탄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아파트는 신축이다 라는 점은 일산이나 운정에 선뜻 손을 대기 어렵게 만든다.

 

심지어 국토부에서 서울에 더 가깝고 똑같이 평평한 고양창릉에 3기신도시를 넣겠다고 하니 일산이나 운정 입장에서는 열이 뻗치지 않을 수 없다.

 

신도시라는게 조성에 10년 이상 걸리는 대사업이기는 하나, 안 그래도 지금도 자유로 근처의 모든 IC가 평일 저녁과 주말만 되면 극심한 정체를 겪는 중인데 주변에 주택만 자꾸 늘어나고 철도교통망 개통은 더뎌서 교통난으로 일산이 실거주하기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만약 현 정권이 주택개발에 대한 태도를 바꾸거나 정권이 교체되어 서울 시내 재개발/재건축이 활발해지면 이 넓은 땅들이 타격을 1순위로 받는다.

언제든 시류에 따라 갈아탈 것이라면 상관없겠으나, 10년 이상 실거주하면서 투자적 효과도 같이 누리고 싶다면 일산이나 운정은 피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이유로 나는 김포신도시도 투자 관점에서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

김포 밑에 검단신도시, 계양신도시, 검암주택지구, 부천대장주택지구 등이 이미 실현되고 있는 대체재이며 청라국제도시라는 강자가 근처에 있어 '서울 서쪽은 제가 대장입니다' 라고 외칠 수 있는 그 '서쪽'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 전망이다.

필요하면 풀어서 개발해 버릴 수 있는 자연녹지지역과 개발제한구역도 근처에 더 있다. 

지금이야 김포 쪽이 상대적으로 신축이지만 10년 뒤에도 과연 그럴까? 결국 핵심은 건물이 신선하냐가 아니라 입지일 뿐이다.

 

신규 진입의 위협을 막으려면 산이나 강으로 적당하게 차단이 되어 있어야 하며 이것이 바로 21세기에 필요한 배산임수이다.

과천시 일대

예를 들면 과천이 그렇다. 과천은 좌로는 관악산, 우로는 청계산 및 저수지로 막혀 있어서 경마공원역 옆 과천신도시, 주암지구, 지식정보타운을 채우고 나면 근처에 신규공급이 더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서울과도 가까워서 과천신도시와 서울 사이에 고양창릉처럼 끼어들 대규모 택지가 없다.

게다가 과천신도시 및 지정타에는 주택만 넣는 것이 아니고 업무지구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주택의 희소성이 보장된다.

이러면 n기 신도시가 나온다 하더라도 입지가 대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방어된다. 

다만 여타 신도시와 마찬가지로 서울이 전면적인 재건축 재개발 허용 국면으로 들어가면... 그때는 15.95억에 매수한 슈르좌는 피눈물 흘릴 거다...

 

고전적 의미의 배산임수가 여전히 주효한 곳도 있긴 있다. 동부이촌동처럼 집을 남향으로 내면서도 한강뷰를 뽑을 수 있고 북쪽으로는 남산뷰 나오는 위치. 이런 곳이 아니라면 좋은 입지에서 주변의 신규공급을 차단해 줄 수 있을만큼 산과 강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느냐 아니냐의 관점으로 배산임수를 봐야 한다.

 

집을 산다면 서울에 사는 것이 좋겠지만, 여러 사정으로 그럴 수 없다면 적당히 넓고 적당히 가로막힌 곳을 골라서 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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