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투자/부린이일기

[부린이일기] 동부이촌동 한강변 아파트 임장기 : 모범답안 첼리투스

반응형

노숙자도 슈퍼카를 품평할 수 있지 않은가? 매수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동부이촌동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한강뷰가 나오는 서울의 1급지는 한남, 성수, 여의도, 반포, 압구정, 잠실 등 많지만 용산기지와 연이 있어서인지 이촌동은 늘 끌리던 지역이었다.

 

카투사 현역 시절 South Post의 121병원 식당(DFAC)에 갈 때마다 근처의 서빙고 용산파크타워를 올려다보며 '와 저기는 대체 어떤 사람이 사는 것일까' 하고 선망했던 기억이 난다.

 

이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 경의중앙선 철길이다.

한강철교를 가로질러야 하는 1호선/KTX와는 달리 경의중앙선 용산 - 서빙고 구간은 땅에서만 다니는 곡선철로임에도 불구하고 철길 지중화는 논의만 있어왔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전체적인 도시개발 관점에서 봤을 때는 이런 수도의 요지에 지상철로를 내버려두는 것은 철길 근처의 땅까지 부가가치가 낮은 똥땅으로 만들기 때문에 당장은 공사비를 아껴도 장기적으로는 큰 낭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이 곡선철로 덕택에 시끌벅적한 용산역 쪽 번화가와 도보접근성이 많이 차단되어, 동부이촌동의 좋은 입지가 보전되면서도 묘한 고요함과 부촌이 가져야 할 어느정도의 폐쇄성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지중화를 별로 원하지 않는 이촌 주민도 꽤 있을 듯하다. 

 

더구나 서부이촌동과는 달리 철길의 노선 수가 많지 않고 (한강철교는 열찻길이 총 네 개나 된다) 직선구간이 아니기 때문에 열차 통과 시 건널목의 땡땡거리는 소리와 바퀴의 마찰음은 있어도 굉음이 나지는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철로 건너편 용산의 오피스 빌딩들과 용산기지 근처의 아파트들을 뒤로 하고 쭉 걷다 보니 이촌 장미맨숀과 같이 작게 분할된 단지들이 나온다. 단지가 작은 아파트라고 안 늙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쪽 주민들도 골머리를 앓을 것 같았다.

 

부지가 너무 좁으면 재건축 사업성이 떨어지니까 옆 단지와 이해관계를 맞추는 게 가장 이상적이기는 한데, 재건축 추진과정에서 한강맨션과 한강삼익 둘이 함께할 길을 모색하다가 결국 따로 추진하기로 한 걸 보면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런 조그만 단지들은 결국 재건축보다는 자연스럽게 리모델링 방향으로 손이 뻗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땅콩여사님이 사신다는 한강자이

좀더 걷다 보면 나오는 한강자이에서는 2000년대 느낌의 건물배치와 조경수들을 볼 수 있었고 살기 좋은 중산층(이제는 중산층도 매수하기 어렵지만..) 아파트의 기운을 물씬 풍긴다.

한강자이를 지나 동부이촌동의 제일 뜨거운 감자 한강맨션에 직접 와보니, 입지도 입지지만 20년 전에 내가 살던 잠실시영아파트(現 잠실파크리오)와 너무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동일한 모더니즘의 건물 느낌, 아파트 옆 보도 배치와 보도블럭 및 연석까지도 똑같고 주차환경까지도 그랬다. 70년대 아파트는 이렇게 지으세요 라고 누가 정해준 것마냥 그랬다.

 

재건축 기다리는 마당에 조경이 큰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한강맨션의 조경은 최근의 신축아파트와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요즘 신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축들의 조경수는 3m 이상의 커다란 침엽수를 널찍한 간격으로 시원하게 박아서 사용하는 데에 반해, 여기는 잠실시영아파트가 그랬던 것처럼 일단 활엽수를 많이 심고 보도 옆의 남는 자리에는 회양목과 같은 관목을 아낌없이 꽂아넣어 풀색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조합원 여러 사람 뒷목잡게 만들었다는 문제의 한강맨션 놀이터 저편 뒤로 래미안 첼리투스가 보인다.

한강맨션 660세대 소유주가 제일 싫어하는 장소 놀이터에 직접 와 봤다. 미끄럼틀과 철봉만 덩그러니 있고 다른 뭐가 없다. 집합건물법(1984)이 20년만 일찍 제정되어 있었다면 이미 이 단지는 저 멀리 보이는 래미안 첼리투스처럼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강맨션은 내년이면 만 50세 지천명을 맞으실 고령 철근콘크리트 아파트이기 때문에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없이 이 건물을 내버려두는 것은 그야말로 노인학대나 다름없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철콘 얘기도 잠깐 써보겠지만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는 대충 지으면 50년차부터는 정말 뼈대부터 위험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경제와 정치 논리를 떠나서 안전 문제상 20년이고 30년이고 더 내버려둘 수는 없다.

 

다만 수 년 스케일 내에서 본다면 재건축을 승인 안 할 논리가 행정적인 수준이 아니라 사법적인 수준에 이르러 있기 때문에, 재건축에 우호적인 정권과 지자체가 들어서지 않는 이상 한강맨션은 재건축 진행에 계속 난맥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게다가 지금 재건축에 들어간다고 한들 지금은 35층 층수제한도 있고 임대도 넣어야 하고 재건축초과이익도 왕창 뺏기고 여러모로 현 상황은 조합 입장에서 뒷맛이 쓸 것으로 보인다.

 

강북 최악의 주차난을 겪고 있는 한강삼익아파트

한강맨션 옆에는 중경고등학교와 붙어 있는 한강삼익이 있었는데 외장이 그야말로 '나 재건축 승인해줘 ㅠㅠ'라고 묵언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밤에 보니까 더욱 무시무시했다. 주민들은 적응하셨겠지만..

 

더 심각한 점은 층고가 높은데도 지하주차장이 없어 이중주차는 기본이고 삼중주차까지 되어 있어 아침에 차빼서 출근해야 할 때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주차된 차량들이 주차라기보다는 테트리스에 더 가까웠다.

 

4개 동 329세대로 바뀐다고 하던데, 여기도 재건축사업시행계획 인가까지 서울시한테 받았다고 하니 어서 멋있는 모습으로 탈바꿈했으면 좋겠다.

'왕  궁'

50년 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주변에 모래톱밖에 없어도 난방도 알아서 해주고 따신물도 잘 나오고 자동차도 흔치 않은 시절에 무려 주차장이 구비되어 있었던 이 5층짜리 아파트를 '왕궁'으로 여겼으리라.

 

용적률 148%짜리 46년차 왕궁아파트에 가보니 과연 한강맨션과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단지의 부지가 살짝 좁은 점이 아쉬웠다. 낡기는 똑같이 낡아서 여기도 재건축이 시급하다. 최근 35층 250세대 1:1 재건축계획을 들고갔다가 서울시가 '아몰랑ㅡㅡ 임대 50세대 더 넣어와' 라고 빠꾸를 놨다는데, 조합에서 결국 300세대로 늘려 짓기로 딜을 받아들였다고 알고 있다.

 

구 렉스아파트(現 래미안 첼리투스)보다 부지가 좁기 때문에 이촌한우리공원처럼 땅을 길게 쭉 떼어다가 기부채납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뭐라도 공공기여 점수는 채워야 하니 임대 추가를 받기로 한 모양이다.

외국인들이 보면 South Korea의 주거지 빈부격차로 인식한다는 그 구도

순조롭게 사업이 흘러간다는 가정 하에 몇 년이 지나면 사진으로만 남을 왕궁 뒤로 동부이촌동의 대장님이 보인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2018년부터 내 마음 속 원픽인 아파트 래미안 첼리투스도 렉스아파트 재건축의 첫 삽이 몇 년만 늦어졌더라면 나올 수 없었을 건축물이다. 개인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것만큼은 오세훈 시장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상급식으로 캐삭빵 조진 건 한심하지만...

 

왕궁아파트를 지나 첼리투스의 정문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알지 못할 벅참과 열망이 막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카푸어들이 외제차 타며 주장하는 '하차감' 따위는 하나도 부럽지 않은데 이 졸라딱딱하게 생긴 남성적인 56층 201m 마천루 아파트는 어떻게든 떡상해서 오너라 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다.

1:1 재건축으로 이 우람한 장대양봉 3개를 뽑기 위해 추분금을 세대당 근 6억 원을 부담했다고 하니 정말 렉스아파트 460 각 세대의 여유가 통유리에서부터 뿜어져 나온다. 이런 게 진짜 FLEX, 진짜 SWAG이지...

 

첼리투스야말로 동부이촌동 재건축 단지들이 지향해야 할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금의 상황은 좀 많이 아쉽다. 동부이촌동은 한강변 도로 안쪽 각 단지의 부지가 어지럽게 섞여서 배치되어 있지 않고 부지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고 딱딱 구획이 잘 나뉘어 있기 때문에, 규제만 없다면 재건축 사업성은 최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단지들이 비교적 정방형에 가까운 모양이라 사선으로 잘 배치하면 단지간 영향을 적게 받고 적게 끼치면서 많은 세대에서 한강뷰를 뽑아낼 수 있다.

 

낮은 건폐율에 높은 건물이 줄지어 있으면 우리도 홍콩이나 싱가포르 부럽지 않은 한강뷰가 나올텐데 현 정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