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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린이일기] 서부이촌동 용산기지창 아파트 임장기(1) : 진퇴양난 시유지

인세인래틀즈 2020. 8. 18.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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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양대산맥이라고 말하지만 둘 중 어느 하나가 나머지 하나에 견주기에는 좀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더 많은 실권을 쥐고 있었다는 점이나, 군인들이 맥심은 알아도 스파크는 모른다거나, 남한 사람들이 아오지 탄광의 무서움은 알아도 철산 탄광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경우가 그렇다.

 

서부이촌동(이촌2동)이 바로 그러한 케이스로, 이름만큼은 동부이촌동(이촌1동)에 맞먹는 느낌이다만 입지조건, 재건축/재개발의 사업성, 향후 개발계획의 불확실성 등 여러 측면에서 그 가치가 동부이촌동보다 애매한 지역이다.

실제로 다녀와 보니 지도로 보는 것보다도 심각한 문제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어, 사실 양대산맥이라 비유하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우선 지도로 보았을 때 서부이촌동의 미래가치에 관여할 권역은 크게 4군데라 판단했다.

 

1. 경부선 북단(청색) : 서부이촌동 1. 용산기지창 부지와 맞닿아 있는 알맹이 지역이고 이 지역을 그냥 서부이촌동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리모델링할 단지와 재건축해야 할 단지가 이리저리 섞여 있으며 일부 단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2. 경부선 남단(자색) : 서부이촌동 2. 이 지역은 외딴 섬 같은 곳으로서 앞으로 별 변화가 없을 예정임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서부이촌동의 미래가치에 안 좋게 관여할;;(같은 행정동이니까...) 그런 지역이다. 그래도 강변/강서 아파트는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3. 경부선(적색) : 이 철길이 없었다면 소음도 없고 외딴 섬도 안 생기고 용산삼각선도 없어 북쪽으로의 접근성도 차단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의중앙선 철길과는 달리 경부선은 지중화의 'ㅈ'도 실현되기 어려워 앞으로도 계속 서부이촌동의 발목을 잡을 예정이다.

4. 용산기지창(녹색) :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사실상 여기가 어떻게 개발되느냐에 따라 서부이촌동의 미래가 결정된다.

 

이러한 판단을 염두에 두고 서부이촌동 단지들을 보러 나갔다.

 

 

시유지에 건립되어 있는 중산시범, 이촌시범

 

사진을 못 찍어왔는데 서부이촌동 최북단 한강변 아파트인 중산시범(51년차, 7층)은 이촌시범(51년차, 6층)과 함께 서울특별시 시유지 위에 올라가 있는 건물이다. 이걸 사면 건물은 내껀데 대지지분이 내 것이 아닌 아파트라는 뜻이다. 대지지분이 내 것이 아니므로 암만 내가 입주자에 다른 입주자도 다 끌어모을 수 있다 해봐야 시유지 매입절차 없이는 재건축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저소득층, 철거민들이 20년 장기상환계획에 따라 깔고앉은 땅 지분까지 깔끔하게 먹은 잠실시영아파트(파크리오), 가락시영아파트(헬리오시티)는 중산시범이나 이촌시범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임에도 단지도 크고 대지소유권 문제도 없어 이미 대단지재건축을 완료하고 명성 높은 주거지가 되었다. 

 

반면 중산시범은 지어질 시대에는 중산층도 들어가서 살만한 건축물이었으나, 50년이 지나 재건축을 하려니 시유지를 매입해야 되는데다가 단지도 좁아서 용적률을 40층 50층 왕창 올려주지 않는 이상 사업성을 뽑아내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재건축/재개발에 우호적이지 않은 지금 정권의 분위기, 이미 확립된 35층제한+재초환+분상제 등의 제도적 장애물에 더해서 심지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재건축 난이도는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다. 

 

중산시범은 2007년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에 따라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서부이촌동을 넣어 통개발하기로 서울시가 밀어붙일 때에 거세게 저항하던 단지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유지 위에 올라가 있다는 이유로 이주보상을 다른 서부이촌 단지보다 적게 받을 것이 뻔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또 나름 기득권이라면 기득권인 한강뷰도 용산기지창 부지 쪽으로 주택물량배정을 받으면서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중산시범 입장에서 또 화가 나는 일이 있는데 사실 재건축조합을 2004년에 발족해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2007년에 통개발 한답시고 '일단 스톱' 당했다가 통개발이 무산되면서 다시 재건축을 하려고 보니 시유지 공시지가가 올라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부 중산시범 주민들은 2007년 용산국제업무지구 지정으로 인해 재건축 추진을 못하고 그 사이에 시유지 가격이 올라버렸으니 이 기회비용의 책임은 서울시에 있는 것이고, 시유지는 2000년대 공시지가 기준으로 매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까지 제기한다.

시유지 감정평가액이 대부분 공시지가의 몇 배 수준 이렇게 책정되다보니 서울 땅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중산시범 재건축 사업성은 떨어지고 예상 세대별추가분담금은 늘어나는 진퇴양난이 있다.

 

그래도 철근콘크리트의 내구연한을 담보할 수 없던 1970년에 지어진 51년차 아파트의 위태위태한 외관을 보니 어떻게든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근처의 동갑내기 이촌시범아파트도 외관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한가지 차이점은 높다란 북한강성원아파트가 한강뷰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밤에 가봐서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성원아파트(22층)가 이촌시범(6층)보다 워낙 높아서 조망권이 문제가 아니라 일조권까지 차단될 지경인 수준이었다. 그래서 이 단지는 아무리 재건축이 된다 하더라도 한강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단지 안쪽으로 걸어들어가 보면 좀더 심각한데 동 간의 간격이 너무 가깝다보니 주차난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지나다니기에도 너무 갑갑한 환경이다. 이 아파트가 지어질 때에야 자동차가 보급되기 전이었으니 이 정도의 동 간격이 용인될 만했지만 2020년의 서울에 이런 주거건물이 방치되어 있다는 건 좀 너무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지럽게 놓인 전선, 낡은 외벽과 오래된 1층 상점들의 화물 상자가 '깨진 유리창' 이론을 연상시켰지만 유흥구역과의 접근성이 떨어져서인지 단지는 엄청 조용했고 그래피티라든가 기물파손 같은 불량배들의 흔적이 보이지는 않았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에 휘둘리는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이촌시범 역시 시유지를 깔고 앉아있기 때문에 중산시범과 마찬가지로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소나무는 오백년을 살 수 있지만,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는 오백년을 살 수 없다. 

 

시범아파트가 겪는 일련의 문제점은 용산기지창 개발 이슈 때문도 있지만,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계획경제체제 국가도 아닌데 나라 소유의 땅에 건물을 짓고 개인을 입주시킨 그 첫 단추의 탓이 크다.

고도성장기에 '일단' '빨리빨리' 시민/시영/시범아파트를 지어 보금자리로 보급할 때 땅과 건물의 소유분리가 가져올 파급효과를 생각하지 않은 부작용이 이제서야 올라오는 것이다.

날림공사 시민아파트는 보상 후 철거, 물량으로 승부한 시영아파트는 대단지재건축 뭐 이렇게 정리가 되어 왔으니 시범아파트도 시유지 매입 후 재건축이 순리에 맞는 것으로 보이지만, 갈 길이 매우 험난해 보인다.

 

또 이런 아파트는 Pricing이 극도로 어렵다.

기본적으로 부동산이라는 게 감가상각되는 건물을 깔고 앉은 땅값의 장기적 상승으로 이겨낸다는 가정 하에 밸류에이션과 투자를 하는 것인데 서부이촌의 시범아파트는 희한하게도 그게 적용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재건축이 가져올 효과를 추가로 변인에 포함해서 계산해야 한다.

건물 가치야 철거비용 수준이랑 똔똔, 즉 0 이렇게 대충 놓고 재건축 이후의 모습은 비슷한 한강변 아파트를 참고하여 그 효과를 어찌어찌 짐작한다 하더라도 언제 공시지가가 어떻게 재산정되느냐, 언제 시유지를 조합이 매입하느냐, 언제 재건축이 승인나서 착공하고 완공되느냐에 따라 재건축 이후의 가격과 비용 차이, 즉 ROI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토지거래허가제로 묶여 있어 어차피 불가능하지만 이런 불확실성 덩어리는 투자 물건으로 고려할 대상은 아니다.

 

 

 

서부이촌동의 미래를 가로막는 것은 오래된 시범아파트와 시유지뿐만이 아니다.

최고의 뷰맛집 입지를 가진 고층아파트도 그렇다.

 

이건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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